일요일, 10월 01, 2006

해이리... 실망 대실망... 자본 위에 선 예술공사판

어제 해이리를 맘 먹고 다녀왔다. 전부터 해이리, 해이리를 듣기는 했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귀차니즘이 발목을 잡았는데, 감행했다.

집 앞에서 200번을 타면 4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더니,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일산 백석역에서 1시간 정도 걸렸으니, 합정역에서는 1시간30분은 걸리겠다.

버스는 3게이드 앞에 섰다. 게이트에 들어서는 순간 드는 생각. "어, 이거 뭐야? 공사판이잖아." 그랬다. 아직 공사가 덜 끝나도 한참 덜 끝났다. 이런 공사 중에 왜 사람들이 해이리 해이리했는지 모르겠다.

공사판 먼지를 피해 '딸기가좋아'라는 딸기 브랜드 샵과 놀이터에 들어섰다. 들어서서 눈길 주는 제품마다 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컵 하나에 2만2천원, 인형 하나에 5만원, 그리고 가장 놀랐던, 아주 대형인형은 63만원! 입이 쩍 벌어지다못해 욕이 나왔다. 나중에 애들 데리고 절대로 오지말아야지. 사달라고 조르면 매우 난감하겠다싶었다. 지금 애들 데리고 오는 부모들은 돈 푼깨나 있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이 먼 데까지 애들 차에 태워서 이 비싼 거 파는데 데리고 와서 놀리고 있는 걸 보니 이해가 안됐다. 차라리 한강 고수부지나 가지....

얼른, '칼만안들었지날강도'같은 딸기샵을 빠져나와 무작정 공사판을 걸었다. 먼지와 차를 피해 다달은 곳은 어느 멋진 서점. 1층은 레스토랑에 2, 3층은 서점이었는데, 들어가보니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매력적인 디자인과 책장.

배가 출출해 레스토랑에도 관심을 가져봤지만... 보통 2만원은 훌쩍 넘는 메뉴를 보고 참았다. 예술, 문학, 인문 위주의 책과 베스트셀러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이쁘게 전시가 되어있을까싶을정도로 이뻤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전시' 수준. 예술적인 건축 디자인과 조명, 그리고 책 표지들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그 예술적 기운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전시회를 만드렁내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은 아니었다. 자주 오는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책을 펼쳐보거나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고가의 무언가를 파는 곳, 고가의 그 무언가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만 음미하는 고급샵 같은 느낌이랄까... 돈 없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서 한껏 책을 누리는 공간이기는 힘들 것 같다.

마땅히 쉴 곳도 없었다. 대부분 공사판이라 쉴 데는 이제 공사가 끝나고 장사를 하는 집 밖에 없는지라, "먼저 음료수를 구입하신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같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걷고 또 걸어서 풀밭에 벤치를 만들어둔 곳을 찾았다. 그늘도 하나 없었지만, 여기밖에 지친 다리를 쉴 데가 없어서 쉬었다. 음식값을 비싸고, 음료수 하나도 몇천원 주고서야 사먹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다행히도 집앞 제과점에서 사온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계획하고 나온 처지에 땡볕 아래에서의 빵조각 식사라니 처량해보이기는 했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맛있게 해치웠다.

"자, 빨리 헤이리를 빠져나가자!" 다행히 바로 옆에 영어마을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비판해마지않던 영어마을로의 피신이라니! 헤이리는 그야말로 자본과 예술의 과잉이 빗어낸 평범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없는 곳이었다. 내년 4~5월은 되야 뭔가 완성도가 보이겠지만, 그 때 와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예술가들은 삐까번쩍한 디자인된 건물에 선가날픈 비싼 요리들만 먹고 사는가?

아무쪼록, 공공 휴식 장소라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 있는대로 즐기고, 돈 없는 사람들은 돈 없는대로 즐길 수 있는 곳만이라도 두면 좋겠다. 가장 돈과 멀어졌으면 싶은 공간이 '돈 없음'을 가장 절실히 느껴버리게 만드는 곳, 그곳이 헤이리였다.